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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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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컬럼비아 레코드는 1888년 설립된 미국의 음반사로, CBS, 소니를 거쳐 현재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LP 레코드 형식을 최초로 도입하고, 프랭크 시나트라, 밥 딜런, 마일스 데이비스 등 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제작했다. 1950년대에는 에픽 레코드를 자회사로 설립하고, 1980년대 소니에 인수되었으며, 현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비욘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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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레코드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컬럼비아 레코드
원어 이름Columbia Records
1999년부터 사용된 로고
설립일1889년 1월 22일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로 설립)
설립자에드워드 D. 이스턴
모기업컬럼비아 그래프폰 회사(1925-1931)
그리그스비-그루노우 컴퍼니(1931-1934)
아메리칸 레코드 코퍼레이션(1934-1938)
CBS(1938-1988)
소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1988-1991)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1991-2004; 2008-현재)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2004-2008)
배급사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국제)
레거시 레코딩스 (재발매)
장르다양함
국가미국
위치뉴욕
웹사이트COLUMBIARECORDS.com
추가 정보
타임라인컬럼비아 레코드 125주년 인터랙티브 타임라인
회사 역사팝 역사의 금광
베를리너와 축음기 산업에밀 베를리너와 녹음 산업의 탄생: 축음기
레이블소니 뮤직 레이블

2. 역사


  • 1888년 노스 아메리칸 포노그래프(1888년 설립되었으나 1894년에는 파산함)의 자회사 "콜롬비아 포노그래프"로 설립됨.
  • 1894년 아메리칸 그래포폰(1886년 설립)을 인수함.
  • 1897년 영국 법인 "영국 콜롬비아"(현 영국 EMI)를 설립함.
  • 1906년 사명을 콜롬비아 그래포폰으로 변경함.
  • 1927년 방송국 "CBS(Columbia Broadcasting System)"을 설립함. 또한 (주)일본축음기상회(닛포노폰 레코드 제조. 현: 일본 콜롬비아)와 제휴하여 일본 국내에서 콜롬비아 레코드의 수입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함. 일본축음기의 레코드 공장에서 콜롬비아 레이블의 레코드를 제조함. 사명을 일본 콜롬비아로 변경하였으나, 전시 중에는 닛치쿠 레이블로 하였으나, 종전 후 콜롬비아 레이블로 복귀함.
  • 1938년 자회사였던 CBS에 인수됨. CBS 콜롬비아가 됨.
  • 1948년 6월 21일 LP판을 처음으로 상품화[96].
  • 1956년 스테레오 녹음 시작.[97][98][99][100][101]
  • 1958년 7월 14일 스테레오 레코드 발매 시작.[102][103]
  • 1961년 LP 레코드의 고품질 표시로 "360°SOUND" 마크 사용 시작.
  • 1967년 6월 30일 일본 콜롬비아와의 제휴 해소[104]. 단, 일본 콜롬비아에서의 CBS 레이블 사용권은 제휴 해소 후 '''1년간의 유예 기간'''이 있었음.
  • 1968년
  • * 3월 11일 일본에서 소니와의 합작회사 CBS·소니 레코드(현: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SMEJ〉)를 설립.
  • * 6월 30일 일본 콜롬비아에서의 CBS 레이블의 마지막 일본반 신곡으로 자키 기카와와 블루 코메츠의 10번째 싱글 초원의 빛을 발매.
  • * 8월 21일 CBS 레이블의 일본반 발매원이 일본 콜롬비아에서 순차적으로 CBS·소니 레코드로 이전. 당초에는 양반(洋盤)만의 선행 발매였으나, 같은 해 9월 5일부터 포리브스의 데뷔 싱글 올리비아의 노래/벽 너머에을 시작으로 邦盤도 순차적으로 발매됨.
  • 1979년 5월 5일 디지털 녹음 시작(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메타 지휘 뉴욕 필.)
  • 1983년 3월 2일 미국 내에서 CD 발매 시작.[105]
  • 1988년 소니가 CBS 레코드 그룹을 인수함.
  • 2004년 소니베르텔스만이 합작회사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 2008년 소니가 소니 BMG의 베르텔스만 지분을 취득하여 소니 BMG를 완전 자회사화함.
  • 2009년 소니 BMG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로 개칭.

2. 1. 설립 초기 (1889-1929)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Columbia Phonograph Company)는 1889년 1월 15일 에드워드 D. 이스턴과 여러 투자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7][8] 회사 이름은 본사가 위치했던 워싱턴 D.C.에서 따왔다.[7][8] 처음에는 워싱턴 D.C., 메릴랜드주, 델라웨어주에서 에디슨 축음기축음기 실린더의 판매 및 서비스에 대한 지역적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1891년에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상업용 실린더 녹음 카탈로그가 10페이지에 달했다.

1889년 컬럼비아의 본사(워싱턴 D.C.)


1894년 북아메리카 축음기 회사가 해체되면서 컬럼비아는 에디슨과의 관계를 끊고 자체 제작한 레코드와 축음기만 판매했다. 1901년에는 에밀 베를리너가 발명하고 특허를 받은 디스크 레코드와 축음기를 실린더 시스템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6] 1902년에는 낡은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XP" 레코드를 출시했고, 1903년에는 검은색 왁스 레코드를 출시했다.[9]

1903년, 컬럼비아는 초기 아티스트 카탈로그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마르첼라 젬브리히, 릴리안 노르디카를 포함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유명 가수들과 계약하여 그랜드 오페라 레코드(Grand Opera Records) 시리즈를 제작했다. 1908년에는 양면 디스크의 대량 생산을 성공적으로 시작했으며, 같은 해 경쟁사인 빅트롤라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 혼(horn)을 장착한 "그래포놀라(Grafonola)"를 출시했다.

1908년, 컬럼비아는 왁스 실린더 레코드의 녹음과 제작을 중단하고 인디스트럭터블 레코드 컴퍼니가 제작한 셀룰로이드 실린더 레코드를 "컬럼비아 인디스트럭터블 레코드"로 발매하기로 합의했다. 1912년 7월, 컬럼비아는 디스크 레코드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실린더 축음기 생산을 중단했지만, 인디스트럭터블 실린더는 몇 년 더 컬럼비아 레이블로 판매되었다.

1913년 1월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는 주력 제품인 그래포폰을 인정하여 '''컬럼비아 그래포폰 회사'''(Columbia Graphophone Company)로 이름을 바꾸었다.[10]



1920년대 중반 아트 길햄이 전기적으로 녹음한 컬럼비아 레코드의 미국 레이블


이 시기에 컬럼비아는 미국과 해외에서 원형 안에 16분 음표(세미쿼버) 한 쌍이 있는 "매직 노츠"(Magic Notes)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 2. 컬럼비아 포노그래프 컴퍼니 소유 시기 (1925-1931)

1922년 후반, 컬럼비아는 수탁 관리 상태에 들어갔다.[11] 1925년, 이 회사는 자회사인 영국의 컬럼비아 그래포폰 컴퍼니(Columbia Graphophone Company)에 인수되었고, 레이블, 레코드 번호 매기는 시스템, 그리고 녹음 과정이 바뀌었다. 1925년 2월 25일, 컬럼비아는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전기 녹음 방식으로 녹음을 시작했다.[12] "비바토널(Viva-tonal)" 레코드는 78rpm 시대의 상업용 디스크에서 전례 없는 음색과 선명도의 기준을 세웠다. 최초의 전기 녹음은 "속삭이는 피아니스트(Whispering Pianist)" 아트 길햄(Art Gillham)에 의해 이루어졌다. 빅터(Victor)와의 비밀 계약으로 인해 음향 레코드의 판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전기 기술은 비밀로 유지되었다.

폴 휘트먼이 전기 녹음한 컬럼비아 레코드의 영국 레이블


컬럼비아 그래포폰 컴퍼니의 상무 이사였던 루이스 스털링은 웨스턴 일렉트릭의 녹음 과정과 영국에 의한 인수를 추진한 원동력이었다. 원래 뉴욕 출신인 스털링은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컬럼비아 뉴욕(Columbia NY)의 회장이 되어 안정과 성공을 이끌었다.

1926년, 컬럼비아는 오케 레코드(Okeh Records)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과 클라렌스 윌리엄스를 포함한 그들의 성장하는 재즈와 블루스 아티스트들을 인수했다. 컬럼비아는 이미 14000-D 레이스 시리즈에서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를 포함한 블루스와 재즈 아티스트들의 카탈로그를 구축해 놓았다. 컬럼비아는 또한 댄 혼즈비(Dan Hornsby) 등을 포함한 성공적인 "힐빌리(Hillbilly)" 시리즈(15000-D)를 가지고 있었다. 1927년, "스윗 재즈(Sweet Jazz)" 밴드 리더 가이 롬바르도(Guy Lombardo)도 컬럼비아에 합류하여 1931년까지 45개의 78rpm 레코드를 녹음했다.[13] 1928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폴 휘트먼(Paul Whiteman)은 빅터를 떠나 컬럼비아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같은 해, 컬럼비아 임원 프랭크 버클리 워커(Frank Buckley Walker)는 테네시의 존슨 시티 세션(Johnson City sessions)에서 클라렌스 호튼 그린(Clarence Horton Greene)과 "피들린'" 찰리 보먼과 같은 아티스트들을 포함하여 최초의 컨트리 음악 또는 "힐빌리" 장르 녹음을 개척했다. 그는 이듬해 테네시로 돌아가 남부의 다른 도시에서도 녹음 세션을 진행했다. 모란 앤 맥(Moran and Mack)은 투 블랙 크로우즈(The Two Black Crows)로 1926년에 녹음한 '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이 250만 장이 팔렸다.[14]

1929년, 벤 셀빈(Ben Selvin)은 하우스 밴드 리더이자 A&R 디렉터가 되었다. 비바토널 시대의 다른 인기 스타로는 루스 에팅(Ruth Etting), 폴 휘트먼,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 아이파나 트루바두어스(Ipana Troubadours)(샘 라닌 그룹), 그리고 테드 루이스가 있다. 컬럼비아는 1929년까지 하모니(Harmony), 벨벳 톤(Velvet Tone)(두 개 모두 일반 레이블), 그리고 디바(W.T. Grant 매장에서 독점 판매) 레이블에서 저렴한 가격의 팝 제품에 음향 녹음을 사용했다. 에디슨 레코드(Edison Records)가 문을 닫으면서 컬럼비아는 가장 오래된 생존 레코드 레이블이 되었다.

2. 3. 컬럼비아 소유권 분리 시기 (1931-1936)

1929년 주식 시장 대공황과 그 이후의 대공황 여파로 인해 녹음 산업 전체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고, 1931년 3월 주요 주주인 J.P. 모건은 컬럼비아 그래포폰 회사(1926년부터 소유했던 오데온 레코드와 파를로폰 포함)를 그래모폰 사("His Master's Voice")와 합병하여 일렉트릭 앤 뮤지컬 인더스트리스 주식회사(EMI)를 설립했다.[15][16][17] 당시 그래모폰 사(HMV)는 빅터의 완전 자회사였고, 미국의 컬럼비아는 영국 컬럼비아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빅터는 기술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경쟁사를 소유하게 되었다.[15] 반독점 법률을 피하기 위해 EMI는 영국에서 제작된 매트릭스의 프레싱을 계속 출시한 미국의 컬럼비아 사업부를 매각해야 했다.[15]

1931년 12월, 미국 컬럼비아 포노그래프 회사는 그릭스비-그루노우 회사에 인수되었다. 그릭스비-그루노우가 1933년 11월 파산을 선언하자 컬럼비아는 수탁 관리에 들어갔고, 1934년 6월, 회사는[18] 7만 달러에 사크로 엔터프라이즈 사("Sacro")에 매각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컬럼비아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 컨솔리데이티드 필름 인더스트리스 사("CFI")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였고, 그 자회사인 아메리칸 레코드 코퍼레이션("ARC")이 레이블을 운영했다고 의심한다.[19]

1931년 12월 3일, CFI는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사("WB")와 브런스윅, 보컬리온, 멜로톤 레이블의 상표 및 마스터를 ARC에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 컬럼비아는 1932년 중반에 추가되었고, 앤디 이오나의 하와이 음악, 어빙 밀스의 아티스트 및 노래, 그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베니 굿맨과 같은 판매량이 저조한 상품으로 전락했다. 컬럼비아는 일치하는 레이블이 있는 파란색 라미네이트 제품인 컬럼비아 "로열 블루 레코드"라는 마케팅 전략을 시도했다. 1932년 말부터 1935년까지 제작된 로열 블루 음반은 희귀성과 음악적 가치로 수집가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있다.

서던 가스펠이 발전함에 따라 컬럼비아는 이 신흥 장르와 관련된 아티스트들을 영리하게 녹음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컬럼비아는 찰스 데이비스 틸먼을 녹음한 유일한 회사였다. 대공황 시대 재정난 속에서 컬럼비아에게 가장 다행스러운 일은 1936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척 왜건 갱과 독점 녹음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 관계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서던 가스펠의 대표 그룹인 척 왜건 갱은 3,700만 장 이상의 레코드[20]를 판매하며 컬럼비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35년, 허버트 M. 그린스폰은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 있는 주요 제조 공장에서 최초의 노동 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위원회를 이끌었다. 산업노동조합회의(CIO) 지역 회장으로 선출된 그린스폰은 공장 노동자와 컬럼비아 경영진 간의 첫 번째 계약을 협상했다. 1937~38년까지 미국의 레코드 사업은 회복되고 있었지만, ARC의 생존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21]

2. 4. CBS 인수 시기 (1938-1947)

1938년 12월 17일, 미국 내 컬럼비아 레이블을 포함한 ARC(American Record Corporation)는 컬럼비아 방송 시스템(CBS)의 윌리엄 S. 팔리(William S. Paley)에게 70만 달러에 인수되었다.[22][23] 이는 ARC가 1934년에 지불한 가격의 10배였으며, 이후 불만을 품은 주주들의 소송을 야기했다. 원래 컬럼비아 레코드는 1927년 뉴욕의 인재 에이전트 아서 주드슨(Arthur Judson)과 함께 CBS를 공동 설립했지만, 곧 파트너십에서 손을 떼고 이름만 남겼다. 팔리는 1928년 신생 라디오 네트워크를 인수했다. 1939년 1월 3일, 월러스타인(Wallerstein)은 RCA 빅터를 떠나 CBS 축음기 자회사 사장이 되었고, 12년 동안 그 직책을 유지했다. CBS는 3개월 동안 ARC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그 후 4월 4일, 뉴욕 주무부 기록에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Columbia Phonograph Company, Inc.)"를 수정하여 자사 직원 여러 명을 이사진으로 임명하고, 보도 자료에서 "American Record Co.라는 이름을 버린다"고 발표했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실제로 1939년 5월 22일 델라웨어 주 법인인 "컬럼비아 레코딩 코퍼레이션(Columbia Recording Corporation, Inc.)"으로 재탄생했다.[86] NYDOS는 1947년 4월 4일의 후속 설립일을 보여준다. 이 법인은 1954년 10월 11일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 Inc.)로 이름을 변경하고 1962년 1월 2일 컬럼비아 레코딩 코퍼레이션(Columbia Recording Corporation)으로 되돌렸다.[24] 컬럼비아 상표는 1929년에 등록된 델라웨어 주의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 Inc.)에 남았다.[25] 아이크와 레온 레비 형제는 CBS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26]

1939년 2월, NYC 스튜디오는 브로드웨이 1776번지에 있는 ARC 본사에서 뉴욕시 7번가 799번지 6층과 7층("스튜디오 A")으로 이전했다. 본사 사무실, 스튜디오 및 프레싱 공장은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의 바넘 애비뉴 1473번지에도 계속 남았다. 존 해먼드(John Hammond)는 월러스타인에 의해 "인기 음반 부문 부사장"으로 고용되었다(7번가).

1939년 8월 30일, 컬럼비아는 0.75달러짜리 브런스윅 레코드를 0.50달러짜리 컬럼비아 레이블로 교체했다.[27] 브런스윅은 점차 단종되었고, 마지막 발매는 1940년 4월 브런스윅 8520이었다. 1940년 6월 보컬리온(Vocalion)을 중단하고 오케(Okeh)를 시작했다. 1941년 1월 감사에서 1939년 12월 1일부터 1940년 12월 31일까지 브런스윅 레코드 판매량이 15만 장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1931년 12월 3일 이전에 제작된 대여 상표 및 마스터 레코딩 카탈로그에 대한 통제권은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로 환원되었다.

1950년대 후반까지 컬럼비아 상표는 왼쪽 원에 매직 노트(Magic Notes)가 있고 오른쪽 원에 CBS 마이크가 있는 두 개의 겹치는 원이었다.
컬럼비아 음표와 마이크 로고
로열 블루(Royal Blue) 레이블은 진한 빨간색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로 인해 RCA 빅터가 유명한 레드 실 상표권 침해를 주장했다(RCA는 소송에서 패소했다). 블루 컬럼비아 레이블은 클래식 음악 컬럼비아 마스터웍스 레코드 시리즈에 유지되었고, 나중에 녹색 레이블로 변경된 후 1950년대 후반에 회색 레이블로, 그 후 컬럼비아/CBS 클래식 및 브로드웨이 앨범 소유자들에게 익숙한 청동색으로 변경되었다. 캐나다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는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CBS는 1939년 스파르톤 레코드(Sparton Records)와 유통 계약을 맺어 캐나다에서 컬럼비아라는 이름으로 컬럼비아 레코드를 발매했다.

1940년대에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컬럼비아에서 녹음하여 회사의 수익을 크게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시나트라는 컬럼비아에서 200곡이 넘는 노래를 녹음했는데, 여기에는 초기의 가장 인기 있는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당시 컬럼비아의 다른 인기 아티스트로는 베니 굿맨(1939년 RCA 빅터에서 영입), 카운트 베이시, 지미 런스퍼드(둘 다 데카에서 영입), 에디 두친, 레이 노블(둘 다 브런스윅에서 컬럼비아로 이적), 케이트 스미스, 밀드레드 베일리, 윌 브래들리 등이 있다.

1947년, 회사는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 Inc.)로 이름이 변경되었고[28] 멕시코 레코드 회사인 디스코스 컬럼비아 데 멕시코(Discos Columbia de Mexico)를 설립했다.[29]

2. 5. LP 레코드 시대 (1948-1959)

컬럼비아 레코드 사장 에드워드 월러스테인(Edward Wallerstein)은 1948년 6월 33⅓ rpm 장음반 "마이크로그루브" LP 레코드 형식(초기 광고에서는 "Lp"로 표기됨)을 도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32] 이는 40년 동안 축음기 레코드의 표준이 되었다. CBS 연구 책임자 피터 골드마크(Peter Carl Goldmark) 박사가 관리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월러스테인은 윌리엄 세이보리(William Savory) 엔지니어의 기술적 능력 덕분에 장음반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32]

1940년대 초, 컬럼비아는 더 높은 충실도의 녹음과 더 긴 마스터 레코드를 실험해왔으며, 이는 1948년 LP의 성공적인 출시로 이어졌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The Voice of Frank Sinatra)는 1946년 3월 4일에 78rpm 레코드 4장으로 출시된후, 10인치 LP로 재발매 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LP 형식으로 발매된 최초의 팝 앨범이었다. 시나트라는 컬럼비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으며, 그의 예술적 비전과 컬럼비아가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 모두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았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는 최초의 진정한 컨셉 앨범으로도 간주된다.[32] 최초의 LP는 1948년 7월에 발행된 1949년 컬럼비아 레코드 카탈로그에 수록된, 내이선 밀스타인(Nathan Milstein)이 연주하고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한 E 단조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ML 4001)이다.[32] 미국 의회 도서관의 컬럼비아 레코드 서류 보관소에는 ML 4001의 라벨 주문이 1948년 3월 1일에 작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컬럼비아는 6월 21일 LP 출시[33] 전 최소 3개월 동안 유통업체에 첫 번째 LP를 찍어냈다고 추측할 수 있다.[34]

컬럼비아의 LP는 고전 음악의 긴 곡에 특히 적합했기 때문에, 초기 앨범 중 일부에는 유진 오만디(Eugene Ormandy)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브루노 발터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토마스 비첨 경(Sir Thomas Beecham)과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LP 레코드가 공식적으로 시연되기 전에도 컬럼비아는 새로운 속도를 경쟁사 RCA 빅터(RCA Victor)와 공유하겠다고 제안했지만, RCA 빅터는 처음에 거부하고 곧 경쟁력 있는 새로운 45RPM 레코드를 출시했다. LP가 클래식 음반에 선호되는 형식이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RCA 빅터는 1950년 1월 자체 LP를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의 데카 레코드는 1949년에 시작하여 유럽에서 처음으로 LP를 출시했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의 사우스 패시픽 "오리지널 캐스트 녹음"은 에치오 핀차메리 마틴이 1949년에 녹음했다. 뉴욕시에서 진행된 세션에는 기존 금속 마스터와 테이프가 모두 사용되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테이프 버전은 소니(Sony)가 컬럼비아의 브로드웨이 앨범에 전념하는 CD 세트의 일부로 출시할 때까지 사용되지 않았다.[35] 1950년대에 컬럼비아는 인기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발췌한 LP도 출시하기 시작했다.

1959년 여름부터 컬럼비아는 스테레오 정보가 상단에, 모노 정보가 하단에 인쇄된 "덧붙이기" 앞면 슬릭으로 전환했다. 스테레오 발매의 경우 앞면 슬릭을 아래로 이동하여 스테레오 정보가 상단에 표시되도록 하고, 모노 정보는 하단을 감싸 뒷면으로 붙이고 뒷면 슬릭으로 "덧붙였다". 반대로 모노 앨범의 경우 슬릭을 위로 이동하여 모노 정보가 하단에 표시되도록 하고, 스테레오 정보는 덧붙였다.

2. 6. 1950년대

1951년, 컬럼비아 미국 지사는 2년 전 RCA 빅터가 도입한 45rpm 형식의 레코드를 발매하기 시작했다.[36] 같은 해, 테드 월러스타인이 컬럼비아 레코드 회장직에서 은퇴했고,[37] 컬럼비아 미국 지사는 EMI와 수십 년간 지속된 유통 계약을 해지하고 북미 이외 지역에서 컬럼비아 레코드를 판매하기 위해 필립스 레코드(Philips Records)와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38] EMI는 1968년까지 오케이(Okeh)와 이후 에픽(Epic) 레이블 레코드의 유통을 계속했다.

컬럼비아는 1950년 머큐리 레이블에서 프로듀서이자 밴드 리더인 미치 밀러(Mitch Miller)를 영입한 후 1950년대 가장 성공적인 비록큰롤 음반 회사가 되었다. 밀러는 당시 머큐리의 최고 아티스트였던 프랭키 레인(Frankie Laine)을 빠르게 영입했고, 토니 베넷(Tony Bennett), 마할리아 잭슨(Mahalia Jackson), 지미 보이드(Jimmy Boyd), 가이 미첼(Guy Mitchell), 조니 레이(Johnnie Ray), 포 래즈(The Four Lads), 로즈마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케이 랜디(Kay Lande), 레이 코니프(Ray Conniff), 제리 베일(Jerry Vale) 및 조니 매시스(Johnny Mathis)를 포함한 그 시대 최고의 녹음 스타들을 발굴했다. 그는 또한 그 시대 레이블의 최고 여성 녹음 스타였던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초기 싱글들을 많이 감독했다.

1953년, 컬럼비아는 새로운 자회사 레이블인 에픽 레코드(Epic Records)를 설립했다.[40] 1954년 컬럼비아는 스파르톤 레코드(Sparton Records)와의 유통 계약을 종료하고 컬럼비아 레코드 오브 캐나다(Columbia Records of Canada)를 설립했다.[41] 같은 해, 컬럼비아 미국 지사는 새로운 모더니스트 스타일의 "워킹 아이(Walking Eye)" 로고를 도입했다.[43] 이 로고는 레코드(눈) 위의 스타일러스(다리)를 묘사하고 있지만, "눈"은 CBS의 주요 사업인 텔레비전과 그 사업부의 상징적인 눈 로고를 은밀하게 나타내고 있다.

1955년 프로모션 45rpm 라벨의 전환기. 기존의 음표와 마이크, 새로운 워킹 아이 로고가 함께 표시되어 있습니다.


컬럼비아는 레코드 라벨에 "음표와 마이크" 로고를 계속 사용했고, 심지어 두 로고를 모두 보여주는 프로모션 라벨을 사용했으며, 1958년에 "음표와 마이크" 로고가 (미국에서 78회전 레코드와 함께) 단계적으로 없어질 때까지 사용했다. 캐나다에서는 1958년에 "워킹 아이" 로고가 새겨진 컬럼비아 78회전 레코드가 찍혔다. 원래 워킹 아이는 키가 크고 단단했으며, 1961년에[44]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익숙한 모습으로 수정되었다.

컬럼비아는 1951년부터 1958년까지 45rpm 레코드에 이 라벨을 사용했습니다.


1950년대에 컬럼비아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계약을 맺었으며, 19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Newport Jazz Festival)에서 엘링턴 밴드가 자정 이후 열광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경력이 주춤했던 밴드 리더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수석 프로듀서 조지 아바키안(George Avakian) 아래 컬럼비아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일련의 LP를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과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라는 두 명의 현대 재즈 아티스트와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1959년에는 브루벡 콰르텟의 ''타임 아웃''과 데이비스 섹스텟의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가 발매되었는데, ''카인드 오브 블루''는 2003년 ''롤링 스톤(Rolling Stone)''의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목록에서 12위를 차지했다.[45] 또 다른 프로듀서인 테오 마체로(Teo Macero)는 셀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와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와 계약을 맺었으며, 마체로는 데이비스 섹스텟의 1958년 앨범 ''마일스톤''에서 모달 재즈(modal jazz) 탐구자로부터 재즈와 록, 전자 사운드의 결합(일반적으로 재즈 퓨전(jazz fusion)으로 알려짐)의 혁신가이자 대표자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경력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1954년, 컬럼비아는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과 계약하여 소규모 현대 재즈를 받아들였고, 이는 당시까지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인 현장 녹음 앨범 ''재즈 고즈 투 칼리지(Jazz Goes to College)''를 발매하게 되었다.

1956년, 오스트레일리아 레코드 컴퍼니(Australian Record Company)가 EMI가 캐피톨을 인수하면서 ARC가 잃은 캐피톨 레코드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 컬럼비아 제품의 유통을 맡으면서 컬럼비아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유통업체를 변경했다. 당시 EMI가 컬럼비아 상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컬럼비아 자료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CBS 코로넷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같은 해, 고다드 리버슨(Goddard Lieberson)은 컬럼비아와 에픽뿐만 아니라 회사의 다양한 국제 사업부와 라이선스 업체를 포함한 전체 CBS 녹음 사업부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지휘 아래 기업의 음악 사업부는 곧 세계 최고의 녹음 회사인 RCA 빅터(RCA Victor)를 제치고, 1957년 전 세계적으로 5백만 장 이상 판매되어 당시까지 발매된 가장 성공적인 LP가 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앨범을 포함하여 많은 성공적인 앨범과 싱글을 감독했다.

1958년 10월, 컬럼비아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조니 매시스, 도리스 데이, 가이 미첼, 조니 레이, 조 스타포드(Jo Stafford), 토니 베넷, 로즈마리 클루니, 프랭키 레인 및 포 래즈(the Four Lads)와 같은 아티스트의 "그레이티스트 히츠" 패키지를 출시했다.[46]

콜럼비아 레코드는 1956년부터 스테레오 녹음을 시작했지만,[97][98][99][100][101] 스테레오 음반(LP) 제작은 1958년에야 시작되었다.[102][103] 콜럼비아의 초기 스테레오 음반 중 하나는 헨델의 ''메시아''의 단축 및 재구성된 연주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이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한 것이다.[47]

콜럼비아는 1958년 여름 첫 번째 팝 스테레오 음반을 발매했다. 처음 12장 정도는 모두 모노로 이미 출시된 음반의 스테레오 버전이었다. 콜럼비아가 모노/스테레오 동시 발매를 시작한 것은 1958년 9월이 되어서였다. 스테레오 녹음의 모노 버전은 1968년에 단종되었다.

카탈로그 번호 체계와 관련해서는 초기 몇 년 동안 모노 버전과 스테레오 버전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었다. 1960년 팝 스테레오 시리즈는 8300에서 8310으로 증가하여 램버트, 헨드릭스 & 로스 음반인 CL-1510으로 발매된 ''램버트, 헨드릭스 & 로스 싱 엘링턴''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 팝 음반의 스테레오 번호는 모노 번호보다 정확히 6800 높았고, 스테레오 클래식 음반은 모노 번호에 600을 더한 것이었고, 쇼 튜닝 발매는 모노 번호에서 3600을 뺀 것이었다. 각 카탈로그 시리즈의 마지막 두 자리만 일치했다.

1970년까지 팝 스테레오 LP는 9000번대 후반에 이르렀고, CBS 레코드는 모든 레이블에 걸쳐 카탈로그 번호 체계를 개편하고 통합했다. 마스터웍스 클래식 음반은 7000번대에 있었고, 쇼 튜닝 음반은 2000번대 초반에 머물렀다.

2. 7. 1960년대

1961년 후반부터 컬럼비아 레코드는 더 새로운 장비를 갖춘 프레싱 공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깊은 홈"(deep groove) 방식의 음반들은 구형 프레싱 기계로 제작되었는데, 새로운 기계는 기하학적으로 약간 다른 부품을 사용했는데, 이는 이전에 깊은 홈이 있던 곳에 작은 "테두리"(ledge)만 남기는 결과를 가져왔다.[50] 이러한 변경은 1961년 말부터 시작되었다.[50]

미국 외 지역에서 사용된 CBS 레코드 로고


1961년, CBS는 필립스 레코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1962년 자체 국제 조직인 CBS 레코드 인터내셔널(CBS Records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51] EMI가 북미 이외 지역에서 컬럼비아 그래포폰 컴퍼니(Columbia Graphophone Company)라는 별도의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했기 때문에 컬럼비아 레코드라는 이름으로 레코드를 발매할 수 없었다.[51]

1961년 말부터 국내 컬럼비아 음반의 모노 및 스테레오 레이블 모두에 작은 "CBS"가 상단에 표시되기 시작했다.[52] 이 텍스트는 1962년 6월까지 컬럼비아 레이블에 사용되었다.[53]

컬럼비아의 멕시코 지사인 디스코스 컬럼비아(Discos Columbia)는 디스코스 CBS(Discos CBS)로 이름이 변경되었다.[51]

CBS 레코드 인터내셔널 설립과 함께 CBS는 1960년대 초 호주를 시작으로 자체 유통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60년 CBS는 오스트레일리안 레코드 컴퍼니(Australian Record Company)(1936년 설립)를 인수했다.[51] ARC는 1970년대 후반에 공식적으로 회사 이름을 CBS 호주로 변경할 때까지 그 이름으로 거래를 계속했다.

1961년, 미치 밀러(Mitch Miller)가 NBC에서 방영된 버라이어티 쇼인 ''미치와 함께 노래해요(Sing Along with Mitch)''의 진행자가 되면서 컬럼비아 레코드의 음반 목록은 엄청난 도약을 이루었다.[54] 4시즌 동안 방영된 이 시리즈는 밀러의 "싱얼롱(Singalong)" 음반을 홍보했는데, 이 음반은 2천만 장 이상 팔렸다.

1961년 9월, CBS A&R 매니저 존 해먼드는 밥 딜런을 레이블에 영입했다.[55] 딜런의 자칭 데뷔 앨범은 1962년 3월에 발매되었지만 판매량은 그저 그랬다.[56] 하지만 존 해먼드와 조니 캐시는 딜런을 옹호했고, 딜런은 그 후 4년 동안 컬럼비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1960년대에 걸쳐 딜런은 컬럼비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의 초기 포크송들은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녹음되었고, 피터, 폴 & 메리와 터틀즈의 히트곡이 되었다.[58] 1965년, 딜런의 '일렉트릭으로 전환'하고 록 뮤지션들과 작업하려는 논란이 많은 결정은 1965년 히트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으로 그를 더 큰 상업적 성공으로 이끌었다. 딜런의 1960년대 후반 앨범인 ''존 웨슬리 하딩''과 ''내슈빌 스카이라인''은 컨트리 록 장르의 기념비적인 앨범이 되었고, 바이즈와 플라잉 부리토 브라더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1964년 1월 영국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컬럼비아 레코드에는 록 뮤지션이 없었다. 이 레이블은 머지비트(Merseybeat) 음반인 ''The Exciting New Liverpool Sound'' (Columbia CL-2172, 모노 음반으로만 발매)를 발매했다.

테리 멜처(Terry Melcher)는 더 립 코드(the Rip Chords)를 컬럼비아 레코드에 영입했고, 제작 기법을 통해 록 그룹으로 만들었다. 이 그룹은 "Here I Stand"와 "Hey Little Cobra"로 히트를 기록했다.[55]

1967년,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컬럼비아 사장이 되었다. 데이비스 취임 후, 컬럼비아 레코드는 몬터레이 국제 팝 페스티벌에 참석하여 재니스 조플린을 포함한 여러 핵심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계약한 덕분에 록 음악 레이블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조플린은 여러 세대의 여성 록 가수들에게 길을 열었다. 이 기간 동안 주요 인수 중 하나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였다. 그녀는 1963년 컬럼비아에서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고, 오늘날까지도 레이블에 남아 있다. 또한, 컬럼비아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계속 로스터에 유지했으며, 그의 1960년대 후반 녹음작인 ''사일런트 웨이''와 ''비치스 브루''는 재즈와 록 음악의 퓨전을 개척했다.[62]

모비 그레이프는 1967년 데이비스와 계약을 맺었다. 그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은 데뷔 앨범과 앨범에서 발췌한 다섯 개의 싱글을 D-데이 23년 후인 1967년 6월 6일 같은 날 발매했다. 이 앨범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24위에 올랐지만, 싱글들은 차트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1965년 컬럼비아 프로듀서 톰 윌슨이 "사일런스의 소리"의 이전 녹음에 드럼과 베이스를 추가하면서 예상치 못한 1위 히트곡을 기록했다. 그들의 다음 앨범인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와 타임''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4위에 올랐다. 이후 이 듀오는 "겨울의 흐릿한 그림자"라는 톱 20 싱글을 발표했다. 그 결과물인 싱글 "미세스 로빈슨"은 대히트를 기록했다. ''졸업'' 사운드트랙과 사이먼 앤 가펑클의 다음 스튜디오 앨범인 ''북엔즈'' 모두 앨범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트러블드 워터 위의 다리'' (1970)은 1970년 1월 미국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역대 가장 성공적인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63]

데이비스는 1969년 호이트 액스턴(Hoyt Axton)과 톰 러시(Tom Rush)를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로 영입했다. 호이트 액스턴은 컬럼비아에서 발표한 그의 앨범 《마이 그리핀 이즈 곤(My Griffin Is Gone)》은 "과도하게 제작된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았다.[64] 톰 러시는 컬럼비아 데뷔 앨범인 《톰 러시(Tom Rush)》(1970년)에서 "팝 스타일" 처리를 받았다.

2. 8. 1970년대

1970년, 컬럼비아 레코드의 앨범 카탈로그 번호 시스템은 CS-9999에 도달하여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4자리 카탈로그 번호를 유지하면서 1957~1958년에 사용했던 번호를 재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1970년 7월, 모든 레이블을 통합하는 새로운 카탈로그 번호 시스템(30000번부터 시작)이 도입되었다. 이 시스템에서 접두사 문자는 레이블을 나타냈는데, C는 컬럼비아, E는 에픽, M은 콜럼비아 마스터웍스(Columbia Masterworks) 등을 의미했다.[65] 이 시스템 하에서 발매된 첫 번째 CBS 앨범은 필모어 레코드의 엘빈 비숍 그룹(The Elvin Bishop Group)의 앨범(F 30001)이었고, 첫 번째 컬럼비아 발매작은 허셸 버나디(Herschel Bernardi)의 ''Show Stopper''(C 30004)였다.[66]

1970년 9월,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지휘 아래 컬럼비아 레코드는 서부 해안 록 시장 진출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최첨단 레코딩 스튜디오를 개설하고, 조지 댈리를 A&R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 스튜디오는 1978년까지 운영되었다.[67]

1971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SQ 쿼드러포닉" 매트릭스 디코딩 시스템을 사용한 4채널 쿼드러포닉 사운드 레코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조니 캐시(Johnny Cash),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이 기술을 활용했다. 그러나 경쟁 시스템과의 혼란으로 인해 판매량은 저조했고, 1978년에 마지막 쿼드러포닉 녹음이 출시되었다.

1975년, 월터 예트니코프(Walter Yetnikoff)가 컬럼비아 레코드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의 성격 변화와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캐나다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 of Canada)가 CBS 레코드 캐나다 유한회사(CBS Records Canada Ltd.)로 이름이 바뀌었다.[41]

1979년 5월 5일, 컬럼비아 마스터웍스(Columbia Masterworks)는 주빈 메타(Zubin Mehta)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의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Petrouchka)》 녹음 세션에서 디지털 녹음을 시작했다.

한편, 음악 산업의 재정적 쇠퇴로 인해 CBS 레코드는 어려움을 겪었고, 딕 애셔(Dick Asher)가 부사장으로 승진하여 비용 절감과 수익 회복을 담당하게 되었다. 애셔는 독립 프로모터들의 과도한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는 페이올라 스캔들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컬럼비아는 핑크 플로이드의 싱글 "Another Brick in the Wall"과 앨범 ''The Wall''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는 딕 애셔가 독립 프로모터들의 영향력을 시험하기 위한 비밀 실험의 결과였다.

2. 9. 1980년대와 소니 인수

1980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클래식/브로드웨이 부문인 컬럼비아 마스터웍스 레코드를 분사하여 별도의 레이블인 CBS 마스터웍스 레코드로 만들었다.[68] 1988년, 컬럼비아 레코드 부문을 포함한 CBS 레코드 그룹은 소니(Sony)에 인수되었고,[69] 소니는 1991년 모회사의 이름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Sony Music Entertainment)로 바꾸었다. 소니는 CBS 레코드라는 이름에 대한 임시 라이선스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캐나다, 스페인(BMG이 상표권 소유), 일본(닛폰 컬럼비아)을 제외한 지역에서 컬럼비아 상표(컬럼비아 그래포폰)에 대한 권리를 EMI로부터 인수했다. EMI는 1970년대 초 이후로 일반적으로 이 상표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CBS 레코드 레이블은 1991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컬럼비아 레코드로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스페인(소니는 2004년 BMG와 합작 투자를 통해 권리를 획득[68])과 일본[69]은 제외되었다. CBS 마스터웍스 레코드는 소니 클래식 레코드(Sony Classical Records)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06년 12월, CBS 코퍼레이션(CBS Corporation)은 자사의 텔레비전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새로운 소규모 레이블을 위해 CBS 레코드라는 이름을 부활시켰다.(우연히도, 새로운 CBS 레코드는 현재 소니 뮤직의 또 다른 부문인 RED 배포(RED Distribution)에서 배포하고 있다).

1983년 3월 2일 미국 내에서 CD 발매를 시작했다.[105] 1988년 소니가 CBS 레코드 그룹을 인수하였으며, 2004년에는 소니베르텔스만이 합작회사 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다. 2008년 소니가 소니 BMG의 베르텔스만 지분을 취득하여 소니 BMG를 완전 자회사화하였고, 2009년 소니 BMG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로 개칭되었다.

2. 10. 1990년대 이후

1990년대 이후 컬럼비아 레코드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주요 자회사 레이블로 남아있다. 1996년 윌 봇윈(Will Botwin)은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되었고,[70] 1998년에는 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를 역임하며 여러 유명 아티스트 및 신예 아티스트들과 협력했다.[70] 2002년 봇윈은 컬럼비아 레코드 그룹의 사장,[71] 2005년에는 회장으로 임명되었다.[72]

2009년, 소니 뮤직의 재편 과정에서 컬럼비아는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제휴하여 컬럼비아/에픽 레이블 그룹(Columbia/Epic Label Group)을 형성하고 그 산하 레이블로 운영되었다.[73] 2013년 3월 기준으로 컬럼비아 레코드에는 로렌 자우레기, 로비 윌리엄스, 캘빈 해리스, 다프트 펑크 등 90명의 아티스트가 소속되어 있었다.[75]

2018년 1월 2일, 론 페리가 컬럼비아 레코드의 회장 겸 CEO로 임명되었으며,[76] 2023년 1월에는 제니퍼 맬러리(Jennifer Mallory)가 사장으로 임명되었다.[77]

3. 로고 및 브랜딩

EMI가 "매직 노츠(Magic Notes)" 로고를 포함한 컬럼비아 상표권을 인수하면서 로고 사용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1990년대 대부분 동안 컬럼비아는 로고 없이 "COLUMBIA"라는 워드마크만 사용했다.[78] 이후 "노츠 앤 마이크(Notes and Mic)" 로고를 부활시키는 실험을 했고, 이는 현재 "컬럼비아 재즈(Columbia Jazz)" 시리즈에 사용되고 있다.[79] 수정된 "매직 노츠" 로고는 소니 클래식(Sony Classical) 로고에서 볼 수 있다.

1999년 중후반, 북미를 제외한 CBS 레코드 로고였던 "워킹 아이(Walking Eye)"가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컬럼비아의 로고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니혼 컬럼비아(Nippon Columbia)가 컬럼비아 상표권을 소유하고 "매직 노츠" 로고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107] 일본에서 CBS/소니 레코드는 1991년 소니 레코드로 변경되었고 1998년 "워킹 아이" 로고 사용을 중단했다. 소니 계열이 된 후에는 "CBS"라는 브랜드명 대신 "Sony", "Sony Music", "SME" 등의 브랜드명을 사용한다.

1991년 4월부터 1998년 6월까지 일본 국내에서 사용되었던 구 소니 레코드 시대의 CI. 2024년 현재, 일본 국내에서는 "워킹 아이" 부분만 소니 뮤직 레이블즈의 음악 레이블 중 하나인 "소니 뮤직 다이렉트"(구・AC룸)의 심벌 마크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수입 레코드점에는 "Columbia" 상표가 붙은 미국반이 있지만, 일본 콜롬비아의 상표 사용 허가를 받았음을 나타내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소니 뮤직의 클래식용 레이블인 "소니 클래시컬"의 로고는 콜롬비아 시대의 흔적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Col'''o'''mbia(예: 콜롬비아 공화국)"와 구별하기 위해 일본 콜롬비아는 상표를 "콜'''롬'''비아"로 표기하고, 소니 측에서는 "콜롬비아" 표기를 사용한다.

4. 소속 아티스트

2024년 현재, 컬럼비아 레코드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브루스 스프링스틴, 셀린 디온, 비욘세, 아델, 로살리아, 해리 스타일스, 마일리 사이러스, 릴 나스 엑스, 블링크-182, 애디슨 레이, 제니, 조조 시와, 도브 카메론, 센트럴 시, 클로이, 홀시, 아이브,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퍼렐 윌리엄스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다.[80] 2012년 10월에는 85명의 녹음 아티스트가 계약되어 있었는데, 이는 소니 뮤직이 소유한 3개의 주력 레이블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다음으로 RCA 레코드가 78명, 에픽 레코드가 43명이였다).[80]

컬럼비아 레코드에는 과거 베니 굿맨, 듀크 엘링턴, 프랭크 시나트라, 자비에르 쿠가르트, 도리스 데이, 빌리 홀리데이, 베시 스미스, 마일스 데이비스, 오넷 콜먼, 키스 자렛, 웨더 리포트, 허비 행콕, 윈턴 마살리스, 퍼시 페이스, 조니 캐시, 조니 매티스, 앤디 윌리엄스, 밥 딜런, 닐 다이아몬드, 사이먼 & 가펑클, 아트 가펑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버즈, 알 쿠퍼, 블러드, 스웨트 & 티어스, 시카고, 재니스 조플린, 산타나, 애로스미스, 엘비스 코스텔로, 주다스 프리스트등이 있었다.

또한, 폴 매카트니, 러버보이, 롤링 스톤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어스, 윈드 & 파이어, 빌리 조엘, 브루스 스프링스틴, 토토, 더 클래시, 저니, 앨리스 인 체인스, 마이클 볼튼, 머라이어 캐리, 데스티니스 차일드, 비욘세, 후지스, 로린 힐, 맥스웰, 토니 베넷, 조니 매티스, 원 디렉션, 왬!(Wham!), 폴 영, 핑크 플로이드, 케이트 부시, 뉴 키즈 온 더 블록, 조나스 브라더스, 피오디, 아이언 메이든, 수잔 보일, 세이코, 토시 쿠보타 등도 컬럼비아와 계약했었다.

클래식 음악 부분에서는 야로슬라프 코치안, 마리아 게이,[106] 수잔 아담스, 요제프 호프만, 블라디미르 고도프스키, 페르치오 부조니, 파블로 카잘스, 에미 데스딘, 릴리안 노르디카, 레오 슐레징거, 헨리 우드, 토마스 비첨,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오스카 프리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 유진 오르만디, 조지 셀,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 줄리아드 현악사중주단,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루돌프 세르킨, 글렌 굴드, 아이작 스턴 등이 컬럼비아 레코드와 함께 했다.

5. 자회사 및 관련 레이블

1978년 8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설립자이자 리더인 모리스 화이트는 아메리칸 레코딩 컴퍼니(ARC)를 재출범시켰다.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배급한 이 레이블에는 데니스 윌리엄스, 웨더 리포트, 더 이모션스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81][82] 1940년대부터 컬럼비아는 ARC 레이블에서 발매된 1930년대 레코드 수천 장을 재발매하기도 했다.

1997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신인 아티스트 홍보 레이블인 어웨어 레코드와 제휴하여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배급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도 이 관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006년 1월, 소니 BMG UK는 최전방 사업부를 두 개의 레이블로 분할했다. RCA 레이블 그룹은 주로 팝과 R&B를, 컬럼비아 레이블 그룹은 록, 댄스, 얼터너티브 음악을 담당했다. 캘빈 해리스, 조지 에즈라, 센트럴 시, 로비 윌리엄스 등이 소속되어 있으며, 사장은 디페시 파마르, 상무이사는 에이미 휘틀리다. 자회사 레이블로는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 레코드와 룸 투 레코딩스가 있다.

2007년, 컬럼비아는 소니 뮤직 내슈빌의 일부인 컬럼비아 내슈빌을 설립하여 뉴욕시의 컬럼비아로부터 완전한 자치권과 경영상의 분리를 확보했다. 컬럼비아는 1950년대에 컨트리 음악 싱글을 위한 20,000번대 카탈로그를 사용하는 등 컨트리 음악 부서에 준자치권을 부여해왔다. 2009년, 컬럼비아 내슈빌은 소니 뮤직 그룹을 통해 소니 그룹의 umbrella 아래 소니 뮤직 내슈빌의 일부가 되었다.

컬럼비아 레코드와 관련된 레이블로는 Capricorn Records, 데프 잼 레코딩스(1985-1993), 소 소 데프 레코드(1993-2003), Loud Records (1999–2002), Chaos Recordings (1993-1995), The Work Group (1995-1997), Date Records, 케모사베 레코드, 스몰 자이언트 레코드, 클라우드보이 레코드, 시그널 레코드, CMV (Columbia Music Video), 브러시파이어 레코드 등이 있다.

6. 녹음 스튜디오

컬럼비아 레코드는 뉴욕, 내슈빌, 할리우드,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1913년 맨해튼 울워스 빌딩에 첫 번째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했으며,[83] 1917년 이 스튜디오에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의 초기 재즈 레코드 중 하나를 제작했다.[84][85]

1939년 뉴욕 7번가 799번지에 설립된 스튜디오 A는 1960년대 밥 딜런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며,[86] 1967년 필 라몬 등의 A&R 레코딩에 매입되어 A&R을 위한 스튜디오 A-1과 A-2가 되었다. 이 건물은 1983년 철거되었다. 뉴욕 52번가 동쪽 49번지 CBS 스튜디오 빌딩 2층과 5층에는 스튜디오 B와 스튜디오 E가 있었다.[87]

1948년에는 맨해튼 머레이힐 지역 30번가 동쪽 207번지에 스튜디오 C와 스튜디오 D가 건설되었다. "교회(The Church)"라는 별명을 가진 이 스튜디오는 1875년에 지어진 기독교 교회 건물 안에 세워졌으며, 당시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평가받았다.[87][88] CBS는 1981년 임대 계약을 포기하고 스튜디오를 폐쇄했으며, 건물은 1985년 철거되어 아파트 단지로 대체되었다.

1961년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선셋대로 6121번지에 있는 컬럼비아 스퀘어 단지에 CBS 라디오 스튜디오 A를 개조하여 스튜디오를 운영했으며, 1972년까지 사용했다. 1962년에는 테네시주 내슈빌의 브래들리 스튜디오(Bradley Studios)(퀀셋 헛)를 인수했다.[89] 해롤드와 오웬 브래들리가 1954년에 설립한 이 스튜디오는 뮤직 로우(Music Row) 지역 최초의 녹음 스튜디오였다. 컬럼비아는 1982년까지 스튜디오를 운영하다가 사무 공간으로 개조했으며,[89] 현재는 벨몬트 대학교의 강의실로 사용되고 있다.[1]

컬럼비아 레코드는 뉴욕 파크 애비뉴와 렉싱턴 애비뉴 사이 58번가 동쪽 111번지에 위치한 리더크란츠 홀(Liederkranz Hall)에서도 녹음했다. 이 홀은 독일 문화 예술 단체인 Liederkranz of the City of New York가 소유했던 곳으로, 빅터도 1920년대 후반에 사용했다.[87][90][91][92] 1949년 리더크란츠 홀은 텔레비전 스튜디오 네 곳으로 재배치되었다.[87][94]

7. 경영진

론 페리는 컬럼비아 레코드의 회장 겸 CEO이다. 제니퍼 맬러리가 사장을 맡고 있으며, 스티븐 루소는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이다. 아부 "부" 티암 또한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에드워드 월러스테인은 1939년부터 1951년까지 회장 겸 CEO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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